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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잘 보기

[책 리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by 밍어 2024. 2. 26.

 

 

 

대학교 선배들과 1달에 1번 모이는 책 모임을 갖는다. 이번 달의 도서는 바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이다. 어떤 장르인지, 어떤 내용의 책인지도 모르고 일단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나에겐 다소 어렵고 읽는 데 시간을 들여야 했던 책이다. 간단한 감상을 남겨본다.

 

예술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음악, 미술 등 예술을 즐기지 못하는 나에겐 상당히 어렵고 고차원적인 질문이다. 나는 이러한 고민을 시를 읽으며 직면한다. 전에 책 모임에서 시집을 읽고 글을 써오는 과제를 한 적이 있다. 내 글의 요지는 나는 시를 읽을 줄 모른다는 거였고, 내가 시를 읽는 방법은 부끄럽게도 그저 '아하!'하는 느낌과 마음의 떨림을 얻는 것이 전부라고 고백했다. 전공자이지만 지식이 많지도 않고, 감성적으로 시를 즐길 줄도 모르는 나라고 생각했던 과거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예술을 접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며 내 방식도 괜찮은 방식이구나 하는 위로를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가진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그 위대한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는 분출할 수가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늘 어려운 일이다.(p29-30)

 

예술을 접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퍼덕이는 한 마리의 새가 있다는 사실. 무엇이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일렁임. 나의 작은 새 한 마리!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p114-115)

 

그저 '아하!'가 예술을 접하는 첫 반응이어도 좋다. 예술을 분석하고  분류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 다음이어도 좋다.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칠 때 이건 어떤 주제의 작품이야, 이건 어떤 경향의 작가가 쓴 거야, 이건 어떤 표현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야 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애도의 끝을 애도하기

 

 

커다란 상실을 겪은 사람은 어떻게 다시 살아가는가? 작가는 어떻게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나는 모든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큰 슬픔과 고통도 시간이 흐름이 따라 전보다 무뎌질 것이라 믿는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p256)

 

애도의 끝을 애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말마따나 삶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구멍 난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워가면 살아갈 수 있다. 이 사실이 내 마음을 위로한다. 형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을 겪은 작가는 촉망받던,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메트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그곳에서 작가는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다. 그가 할 일은 그저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고개를 들고 내면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고요는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삶과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위로를 주는 시간이다. 나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할 땐 고요에 기대보기로 한다.

 

 

짧고 자극적인 글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이 읽기에 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책인 듯하다. 하지만 예술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하고 애정어린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예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는지 놀라웠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대한 타인의 해석이나 관점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아쉽게도 나는 추상성을 견디기 어려워 하는 사람으로 책 읽는 과정이 인내의 시간이었다..ㅠ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품에 대한 시각 자료가 부족해 찾아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나, 이에 대해서도 관련 홈페이지(책에 나온 작품을 정리해둔)가 있다고 들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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