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실을 운영하는 김소영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김소영 작가님처럼 어린이를 대접해주고 기다리는 어른이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해 본다.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p32)
김소영 작가님은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으신다고 한다. '착하다'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서,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아이를 위계질서 속에서 칭찬하려 사용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읽고 들었다. 가끔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착하다고 말하는 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착한 게 아니라 친절한 거라고 꼭 정정해주곤 한다. 부끄럽게도 아이들이 감히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나 당당히 위계질서를 요구하고 있었다니 다소 충격적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란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숨긴 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착한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죽이는 현상으로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다보면 아이의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를 포기해가며 착한 딸, 착한 사람이 되기 싫어 발버둥치는 나인데 이렇게나 서슴없이 착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구나 반성 또 반성하게 되었다. 착하다는 말 속에 또 누군가를 가두지 말 것. 나를 위해서는 때때로 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칠 줄 알 것. 나를 죽이는 것인 착한 것이 아니다.
젊잖음과 정중함에 익숙해지게 하기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p41)
존중 받아본 사람이 존중할 줄 안다. 대접 받아본 사람이 대접할 줄 안다. 나의 가치관에 이리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속으로 감탄 또 감탄하였다. 앞서가는 어른이 문을 잡아주는 친절을 베풀었을 때 그 아이는 누군가를 위해 문을 잡아줄 수 있는 너그러운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존중하고 대접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겠다. 어린이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고, 그래서 어린이가 존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선순환의 고리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나부터 아이들을 더 대접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이런 존중과 대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잘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스승이기 전에 사람이다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만나는 전문가이고, 때로는 유일하게 만나는 지식인이다. 어떤 어린이에게는 자기가 아는 가장 친절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밀려드는 크고 작은 업무 때문에 어떤 부분에는 소홀할 수 있다. 어린이와 밀착한 생활을 하는 만큼 사적으로 감수할 일이 많으니, 때로는 냉정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개인적인 한계로 어린이나 보호자를 실망시킬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선생님들의 실수에 너무 엄혹한 것이 아닐까?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에게 '스승'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 아닐까? (p118)
스승이기 전에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소명의식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화수분이 아니다. 자동차가 연료가 있어야 굴러가는 것처럼 마음도 채워줘야 하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는 연료는 생각보다 사소하지만 대단한 것들이다. 상대의 호의를 권리로 여기지 않는 것, 진심을 담은 감사와 사과 그리고 인정, 앞과 뒤가 다르게 위선떨지 않는 것. 이 정도만 있어도 바닥난 마음을 다시 채워 힘낼 수 있을 것 같다. 교직관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만 어느 하나의 교직관에 교사라는 직업을 가둬두기엔 세상이 너무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워졌다. '교사란 이래야 하는 직업이야'라는 틀에 가두는 말들 자체가 숨이 막힌다. 교사라는 직업 뒤에 부단히 애쓰고 있는 한 사람을, 계산하지 않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봐주길 바란다.
어린이를 배려해주고 기다려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린이가 마음놓고 배울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주변에 어린이가 있든 없든, 자녀가 있든 없든 사회에 어린이는 항상 존재한다. 그것도 '한 명'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성인을 노인이 되는 과정에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성인이 되는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린이는 오늘을, 지금을, 이 순간을 열심히 즐기며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완전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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