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기회의 박탈을 통해 드러난다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p38)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이다. (p146)
이 책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던 메시지는 위의 두 부분과 같다.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이란 곧 '기회의 박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바르고 성실한 청년인 영성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영성은 등록금 문제로 대학 선택에 제한을 받았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고 자연스레 낮은 학점을 받은 영성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영성이 처한 조건과 환경이 그가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되는 셈이다. (p50)
영성이 가족의 해체 없이 안온한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그때도 영성의 목표는 화목한 가정 만들기였을지 생각해본다. 어떤 것에 대한 박탈감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큰 열망과 집착을 불러온다. 영성을 둘러싼 환경이 그에게서 다른,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둘러볼 여유조차 앗아갔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 능력을 박탈당하는 것(수정의 어머니가 금융 사기에 연루된 일),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자존감 상실을 겪는 것(성인이 되어도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소희)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이라는 환경과 '나'를 분리하자
일단 '나'라는 개인의 존재와 가난한 상황을 분리해서 '나'의 사회적 정체감에 훼손을주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했고 도움의필요성을 효과적으로 호소했다. (중략) 단순히필수적인 생존 자원을 끌어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려 했고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긍정할 줄 알았다. '생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빈곤'은 그저 나를 둘러싼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개인의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p95)
가난을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 여길 것. 이 책에서 딱 하나의 깨달음만 가져간다면 나는 이 점을 고르고 싶다. 작가는 가난 속에서 '생존'하는 내가 아니라 '욕망'하는 나, 자아를 실현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단어인 '생존'과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생존하기'와 '욕망하기'의 차이는 정말 크다고 느꼈다. 절벽 끝에 몰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게 욕망하라고 말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을 줄은 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가난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이 놓인 가난이라는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제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멋진 성인으로 성장한 지현처럼, 가난이 곧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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